
"삑… 삑…!"
"물건 좀 더 고르고 와서 계산하겠습니다."
바코드가 찍히는 소리가 들리는 중, 나는 점원에게 말해 계산을 미루고
가판대를 가림막으로 삼아 다른 '인지자'를 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인지자는 단순히 알아차리고 인지하는 것만 하는 존재는 아냐.
동시에 숨어 있는 다른 경쟁자를 인지하거나 색출할 수도 있지.’
그녀는 내가 인지자라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인지자의 역할 수행 방법과
'우리들' 외의 존재들도 알려주었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었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냄새가 나는 것, 심지어 음식이나 음료에서 나는 맛까지
네가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에서 이질감이 느껴지는 순간이 올 때가 있어.
특히 발현지에서의 이질감은 다른 경쟁자가 주변에 있다는 뜻임을 잊지 마.’
나는 천천히 카메라 전원을 켜고 멀리 벤치에 앉아 있는 다른 인지자를 줌인했다.
렌즈가 서서히 당겨지며 피사체는 가까워지고,
피사체 주변의 공간은 축소되었다.
"찰칵."
셔터음이 들리는 순간, 그녀의 시선은 카메라 렌즈를 향했다.
그리고 그녀가 웃으며 일어났다.
아무래도 망한 것 같다.
그녀는 발현지 바깥 벤치에 앉아 있었다.
윤기 나는 검은 단발머리에 오버핏 자켓과 짧은 반바지를 입은 그녀는
어쩐지 영화 레옹의 마틸다를 꼭 빼닮았다.
그녀도 원하는 '감정'을 얻기 위해 이곳에 왔고, 지금은 '감정'을 듣는 중이었다.
인지자는 평범한 일상에서도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감정'을 인지할 수 있기 때문에
적당한 집중이 필요하다.
소리를 듣는 과정에서 다른 경쟁자와 접촉이 생길 수 있었기에
그녀는 건물 바깥에서 소리를 듣고 있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버스가 정차하며 다시 출발하는 소리,
낙엽 하나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닿는 소리….
하지만 그녀가 들으려는 것은 '감정'이 내는 소리였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마음속으로 입으로 내는 듯한 클릭음을 상상했다.
‘딸깍… 딱… 딸깍… 딱….’
마치 메트로놈이 내는 비프음처럼 일정한 속도로 상상했다.
그러자 그녀는 한참을 집중하며 '감정'을 들으려던 중, 간섭음을 느꼈다.
‘찰칵.’
카메라 셔터음이 들린 것 같아, 소리가 나는 방향을 보니
장발의 남성이 편의점 안에서 자신을 찍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의 심장은 쿵쾅쿵쾅 요동치며 뛰고 있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들렸다.’
그녀는 벤치에서 일어나 카메라를 향해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렸다.
그녀가 편의점 쪽으로 걸어왔다.
귀에 꽂아 두었던 이어폰을 빼 케이스에 담으며,
그녀는 웃으며 편의점 창밖에서 나를 향해 바깥으로 나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나는 캔커피를 하나 더 골라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녀에게 캔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미안해요. 몰카를 찍으려던 건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됐네요."
나의 인지 능력은 ‘보는 것.’
발현지에서 멍하니 '감정'을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허공을 바라보고 있으면
오히려 더 수상해 보인다.
특히 다른 인지자와 조우했을 때는 내가 어떤 능력자인지 바로 들킬 수밖에 없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더 큰 오해가 생기는 것보다는 사과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아저씨는 보이는 거군요? 저는 들리는 쪽이에요.
그리고 서로 이곳을 노린다는 걸 알았으니 앞으로 또 볼 일이 있겠네요."
그녀는 같은 부류의 존재를 만나 반가운 눈치로 말했다.
"아, 그리고 그 '카메라'를 사용한다는 건 비밀로 해드릴게요."
그녀는 너무 많은 걸 알아버린 듯했다.
그래도 약속을 했으니 믿어 봐야겠지.
"응, 고맙긴 한데… 그렇게 해준다면 네가 원하는 게 따로 있을 거 아니야?
나에 대해 알리지 않는다면 말야."
그러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만약 우리가 '실패'했을 땐, 그때 저한테만 제가 원하는 감정을 하나 고르게 해주세요.
수요가 거의 없는 감정이라, 나쁜 거래는 아닐 거예요."
‘수요가 거의 없다’라는 말을 들으니 조금은 안심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시작부터 큰 사고를 친 기분이 들었다.
아침에 베인 턱의 상처가 찌릿 아렸다.
아무래도 오늘은 재수가 없는 날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